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우야 아키라 (문단 편집) === 2부 === 히카루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졸업을 끝으로 프로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학업은 그만두었다. 한중일 삼국 주니어 기전인 '북두배'가 열리게 되자, 그동안의 실적(연승상, 승률 1위, 혼인보전 본선 리그 진입)을 인정받아 북두배 일본 대표를 뽑는 예선을 면제 받고 일찌감치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한편 북두배 시작 몇 개월 전에 시작된 혼인보전 본선 리그 5회전에서는 사형 [[오가타 세이지]] 九단과 첫 공식전 맞대결을 벌였다. 아버지 다음으로 많이 대국 해 본 상대이니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을 갖고 임해 전력을 다한 박빙의 힘겨루기를 펼쳤지만 국면이 불리해진 끝에 불계패를 선언했다.[* 참고로 같은 시각, 히카루는 연구회 대선배인 모리시타 시게오 九단과 혼인보전 2차 예선 2회전 대국을 치러 아키라와 마찬가지로 패했다.] 기자들이 아키라에게 친한 선배와의 대국이라 주눅이 들어서 제 실력을 못낸거 아니었냐는 식으로 말하자, 오가타가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노려보면서 "그는 평소처럼 냉정하게 실력을 발휘했다. 그 말인 즉슨, 이 대국은 실력 만으로 승부가 났다는 이야기다."라고 서슬 퍼런 말을 남겼고 '''넌 아직 나보다 한 수 아래다!'''라는 견제구를 받기도 했다. 이후 북두배 일본 대표로 최종 선발 된 히카루와 키요하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히카루는 키요하루가 호텔방을 잡으면 거기에서 연습 대국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지만, 아키라는 우리 부모님이 중국에 가 계셔서 현재 우리집에는 나 혼자 뿐이니 우리집에서 묵으며 연습 대국을 하자고 제안했다.] 며칠 동안 함께 연습 대국을 하며 북두배 준비에 매진했다.[* 둘째 날에는 일본 대표팀 단장인 [[쿠라타 아츠시]]도 찾아와 지도해줬다.] 그리고 북두배 당일에는 히카루가 [[고영하(히카루의 바둑)|고영하]]를 향한 일방적 적개심을 활활 불태우는데 시점이 집중되다 보니 1부와 달리 아키라의 존재감은 옅은 편. 한국전에서 대장 자리를 히카루에게 내줄 때도 흔쾌히 동의했다. 다만 히카루와 키요하루가 중국전과 한국전에서 연패하는 와중에 혼자서 2연승을 거두는 활약을 펼치긴 했으며, 특히 한국 톱클래스 루키인 임일환과의 대국을 작중에서 자세히 묘사하며 아키라의 천재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종화에선 바둑계 공인 히카루의 라이벌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젊은사자전에서 히카루와 대국하는 장면으로 엔딩.[* 히카루가 첫 수를 두는 장면에서 끝났기 때문에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서로 히카루와 아키라를 지지하며 투닥대던 원생 쇼지와 오카가 대국 종료 후 각기 우상을 바꿔버린 점이 개그. 여담으로 세계 대회를 위해 [[중국어]]와 [[한국어]]도 틈틈이 공부해서, 북두배 때는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